[인사이트] 스포츠 빅이벤트 유치 성패와 정권 - ❶ 역대 정권별 스포츠 빅이벤트 유치 성패

 


각 정권서 주도한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전 결과는 어떤가

-우파 정권 성공, 좌파 정권 실패-



국내외적으로 논쟁이 있지만 이른바 '스포츠 빅이벤트' 개최가 개최 국가와 국민에게 주는 경제적·사회적 유무형의 효과는 적지 않다고 한다. 유치 성공은 도시 또는 국가간 경쟁에서 이겼다는 경쟁력 우위 입증의 증표로도 과시되고 있다. 그러기에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는 정부가 나서서 주도하기도 한다. 

한국도 2022 월드컵 대회를 빼곤 그간 각 정부에서 스포츠 빅이벤트 유치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정권이 주도하였다. 정권이 주도한 유치전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은 스포츠 빅이벤트를 대표하는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를 모두 개최한 나라가 됐다.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 2002년 월드컵 일본과의 공동개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는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최초라고 평가된다.

지금까지 각 정권 차원에서 주도했던 스포츠 빅이벤트 유치전의 결과는 어떤가. 여기서 빅이벤트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유치하고자 했던 1988년 하계올림픽은 박정희 정부에서 1979년 초 공식적으로 추진하였으나 10.26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중단됐다.

전두환 정권 개발도상국 처음으로 1988 올림픽 유치

1981년 2월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시가 1981년 2월 2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한국의 1988 하계올림픽 유치전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관협력체제로 정권차원에서 총력을 쏟은 결과 그 해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한국 서울은 당초 절대적 우세로 평가받은 일본의 나고야를 52표 대 27표의 압도적 표차로 이겨 개최권을 따냈다.

1988 서울하계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경험을 갖게 된 한국은 월드컵 개최를 노리게 된다. 바로 김영삼 정부에서다. 처음에 누가 2002 월드컵 개최를 구상했는지와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월드컵유치위원장을 맡았던 고 구평회 한국무역협회장의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정몽준당시 축구협회장이다(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의 주역 구평회 한미협회장의 비화). 

김영삼 정권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성사

유치위원회는 2002 월드컵 단독개최는 어렵다는 내부 판단으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을 모색하였는데, 김영삼 대통령의 앞뒤를 쳐다보지 않고 매진하는 정치스타일에 기인한 막후외교로 막판까지 단독개최를 고집했던 일본도 국제 축구계가 한국 쪽으로 기울어가는 분위기를 감지해 결국 공동개최에 응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 8. 정부는 강원도 평창을 개최도시로 하여 2010 동계올림픽 유치계획을 발표하고 유치전에 뛰어든다. 평창, 밴쿠버(캐나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등 8개 도시가 유치 경쟁을 벌였는데, 2003. 2.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정권 차원에서 유치 도전에 적극 나섰다. 2003. 7. 2.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은 1차 투표에서 5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으나, 2차 투표에서 벤쿠버에 53표 대 56표 3표 차이로 석패를 한다. 

강원도와 정부는 아쉬운 2010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를 딛고 바로 2014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서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강원도와 함께 2014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데,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러시아는 최대 휴양지인 '소치'를 개최도시로 내세워 전방위적으로 총력전을 펼쳤다(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총력전 펼쳐).

노무현 정권 두번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2006. 6. IOC가 3대 최종 후보도시로 선정한 평창, 소치, 잘스부르크는 2007. 7. 5.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마지막 유치전을 펼친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지에서 유치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공세에 패배하고 만다. 2차 투표까지 갔지만 소치에 47표 대 51표로 역전패를 당한다.

강원도와 평창은 두번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동계올림픽 삼수 도전에 나선다. 2011. 1.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IOC에 후보도시 파일을 제출함으로써 세번째 유치 도전에 나섰다. 그 전에 이명박 정부는 일각의 비난을 받으면서 2009. 12. 31. 당시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된 고 이건희 전 삼성회장을 특별사면하여 올림픽 유치전에 동원하였다([MB회고록]⑥ "이건희 회장 사면은 평창올림픽 유치 위한 원포인트 사면") 

이명박 정권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했던 국제대회 유치 여부 결과

2011. 7. 6. 남아공의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포함된 유치 대표단은 드디어 2018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낸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인 63표를 얻어 경쟁도시였던 독일 뮌헨(25표)와 프랑스 안시(7표)를 완벽하게 따돌리고 승리한다.

한편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한축구협회는 2022 월드컵 개최 도전에 나선다. 대한축구협회는 2009. 8. 19. 2022 월드컵 유치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유치전에 나섰고 정부도 2010. 2. 9. 문화체육관광부 김대기 차관(위원장) 주재로 유치지원실무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범정부 차원 유치의지를 천명하나, 사실상 정몽준 당시 FIFA 부회장과 대한축구협회가 전면에 나서 주도한다. 2010. 12. 3.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한국, 미국, 호주, 카타르, 일본 5개국에 대한 비밀 투표를 실시한 결과 카타르가 최종 개최국으로 선정된다.

문재인 정권 2032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 도전 무산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여권과 서울시는 스포츠 빅이벤트 남북한 공동개최를 추진하는데, 2018. 6.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월드컵 방문에서 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에게 2030 월드컵 남북공동개최를 언급하는 등 2030 월드컵 남북한 공동개최를 구상하기도 하지만 실제 착수되지 못한다. 대신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개최로 방향을 튼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018. 9. 19.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2032 하계올림픽 공동개최 협력 합의를 하고, 정부가 2020. 1. 21. 국무회의에서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유치개최 추진계획(안)'을 의결하고 박원순 서울시도 발 맞춰 조직을 구성하고 활동에 나선다. 

그런데 남북한 냉각 국면에 들어서면서 남북한 관련 회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등 남북협력은 무산되고 결국 정부와 서울은 단독으로 유치신청서를 IOC에 제출한다. 그러나 2021. 2. 25. IOC 집행위원회가 호주의 브리즈번을 우선 협상도시로 선정하고 같은 해 7. 21. 일본 도쿄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브리즈번을 개최도시로 최종 선정한다. 

지금까지의 올림픽 유치 성패를 정권과 연결시키면 재밌는 하나의 '룰'이 나온다. 정권적 차원에서 유치전에 나섰다고 보기 어려운 2022월드컵 유치 도전을 빼고서 나머지 대회의 유치 여부 결과를 보면 이른바 우파(보수) 정권은 유치를 성공한 반면에 좌파(진보) 정권은 유치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파 정권인 전두환 정부에서 1988 하계올림픽을, 김영삼 정부에서 2002 월드컵을, 이명박 정부에서 2018 동계올림픽 유치가 성사된다. 그러나 2010 동계올림픽과 2014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던 노무현 정부와 2032 서울평양하계올림픽 유치하고자 한 문재인 정부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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