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스포츠 빅이벤트 유치 성패와 정권 - ❷ 노무현 정부의 유치 아젠다는 무엇이었나

 


노무현 정부 동계올림픽 유치 아젠다는 성공하지 못했다


국내외적으로 논쟁이 있지만 이른바 '스포츠 빅이벤트' 개최가 개최 국가와 국민에게 주는 경제적·사회적 유무형의 효과는 적지 않다고 한다. 유치 성공은 도시 또는 국가간 경쟁에서 이겼다는 경쟁력 우위 입증의 증표로도 과시되고 있다. 그러기에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는 정부가 나서서 주도하기도 한다. 

지난 1편에선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았던 2022 월드컵 대회 유치를 빼고 그간 각 정부에서 주도했던 스포츠 빅이벤트 유치전의 경위와 성패를 알아봤다. 그 결과 우파 정권 유치 성공, 좌파 정권 유치 실패의 '방정식'을 도출했다. 이번엔 그 방정식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성공과 실패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 전략의 차별점을 얘기하려고 한다. 우선 노무현 정부다.

 

김대중 정부는 2002. 8. 1. 자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추진계획' 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정부의 입장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2010 동계올림픽 유치의 의미를 밝혔다.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정신을 실현하고 우리나라 동계종목의 육성과 발전, 동계스포츠의 저변확대, 균형적인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음은 물론 다시 한번 우리나라 국가위상 제고를 통한 국익과 세계 평화공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2010동계올림픽 한반도 평화론과 결부


2010 동계올림픽 유치 전략의 하나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를 제시한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 개최가  IOC가 지향하는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 정신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는 호의적 평가를 목표로 한 한반도 평화 마케팅 전략이었다. 이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관련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 6. 24.경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오찬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경제적 도약의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노무현 사료관).

2003. 2. 4. 강원 춘천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2010동계올림픽 후보지 평창영문이름이 새겨진 스키복 상의를 입고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는 모습(출처 동아일보)


그런데 한반도 평화 마케팅 전략은 '남북 공동개최론'으로 연결된다. 2001년 당시 국내 개최지로 전북 무주와 경쟁했던 강원도(평창)는 '남북공동개최'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2001. 2. 15. 발표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에서 강원도는 "남북공동개최가 성사될 경우 올림픽 정신(평화-화합)에 부합하고 국제무대에서 유치경쟁 유리"라는 주장을 펼쳤고, 같은 달 21. 동계체전 참관차 용평을 찾은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기자회견에서 “강원도가 세계유일의 분단도인 만큼 북쪽강원도와 함께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개최한다면 인류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에도 부합한다”면서 남북공동개최 가능성을 적극 활용해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2월 출범한 참여정부도 국내외적으로 남북공동 개최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 6. 23. 청와대에서 연합뉴스를 비롯해 AP, AFP, 로이터, 교도(共同), 신화(新華)통신 등 세계 유력통신사와 가진 간담회에서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하게 되고, 남북이 협력해 대회를 치를 것"이라며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 남북간 새 교류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남북한 공동개최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한 상황이 많이 달라진 뒤 IOC가 적극 검토한다면 협의해 할 수 있다고 했다.

2003. 7. 2.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장에서 2010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위한 후보 도시 평창, 벤쿠버, 잘츠부르크의 프레젠테이션(PT)이 열렸다. 평창은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영상물을 상영했는데 내용은 아들을 북한에 두고 월남한 이영희 할머니가 평생 그리워하던 아들을 57년 만에 만나는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것이었다('동계올림픽 20년 스토리' 김진선).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정부 대표인 고건 국무총리는 연설로서 지지를 호소하였는데,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할 명분과 당위성 관련해서 개최지 평창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의  강원도 지역임을 강조했다. 단일팀 구성, 남북한 간의 성화 봉송, 개·폐회식과 청소년 프로그램의 공동 참여 등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리면서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앞의 김진선 저서).

IOC위원의 비밀투표로 실시한 1차 투표에서 평창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유효표 107표 가운데 무려 51표를 얻어 밴쿠버(40표), 잘츠부르크(16표)를 제쳤지만 과반수 득표 실패로 벤쿠버와의 2차 결선투표에 나선 결과, 1차보다 2표를 보태는 데 그치며 53표를 득표, 56표의 밴쿠버에 3표차로 유치에 실패했다.

2010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자 한 서포터즈가 울먹이며 '예스 평창'을 외치고 있다(출처 강원도민일보)


노무현 정부 2014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론 제기


2010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강원도와 평창은 전북 무주와의 2014 동계올림픽 개최지 후보 선정 논란 끝에 2004. 12. 30.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임시 총회 결정으로 개최지 후보가 돼 다시 도전에 나선다. 2005년이 되면서 2014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강원도와 도민들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고 정부의 움직임도 적극적이었다.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강원도와 KOC와 협의해 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부처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중대사항은 청와대 정책실장 주도로 고위전략회의를 개최해 방향을 결정하는 등 범정부 준비체제를 가동했다(앞의 김진선 저서).

그런데 2014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문제 이슈가 논란이 된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관련해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공약으로 2014 동계올림픽을 남북 공동개최로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지사 열린우리당 이창복 후보가 남북 공동개최를 주장하나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는 남북 공동개최는 2010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당시 검토했으나 현실성이 떨어져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 문제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14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논란을 뒤로 하고 유치위원회는 2007. 1. 9.경 IOC에 2014 동계올림픽 신청서, 비드 파일(bid file)을 제출했다. 비드 파일에 담긴 내용 중의 하나가 동계올림픽의 남북 공동참여였다. 남북단일팀 구성, 공동훈련 진행, 개·폐회식 공동참여 등을 통해 남북 간 분열과 대립을 청산하고 올림픽 이념인 평화와 화합의 올림피즘을 구현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올림픽 유산을 남긴다는 것이었다(앞의 김진선 저서).

2007. 7. 4.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여 총력전을 펼쳤다. 후보도시 PT에서 한국은 평창 유치의 특별한 명분으로서 남북 분단 현실 관련한 평화와 화합을 강조했다. 2003. 7. 2. 프라하에서 열렸던 2010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IOC 총회 PT 영상에서도 출연했던 이영희 할머니가 4개월 후 세상을 떠난 상황과 관련하여 생전에 아들에게 절절한 사연을 담아 쓴 편지를 자신의 머리카락과 함께 남겼다는 영상을 내보냈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이어서 한 연설에서 "올림픽과 평창이 만난다면 그것을 바로 평화의 상징과 분단의 상징이 완벽하게 조화되는 만남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고, 이어 단상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도 연설에서 "분단 국가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이상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축제가 될 것"이라고 평창 개최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IOC 총회 한국(평창) PT 중 고 이영희 할머니 관련 내용이 상영되는 장면(출처 KBS 뉴스)


북핵 위기 속 동계올림픽 유치 남북 평화 아젠다 설득력은 의문


그러나 이번에도 남북 평화 마케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1차 투표에선 97표 중 평창은 36표를 얻어 34표를 얻은 러시아 소치를 눌렀으나 2차 결선투표에서 100표 중 47표를 얻어 51표를 얻은 소치에 무릎을 꿇었다. 프라하의 악몽이 재현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2010, 2014 평창동계올림픽 아젠다는 남북한 간 평화와 화해였으나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2010과 2014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에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유치의 의미를 주장하던 그 시기는 북한 핵위기가 일어나고 지속된 때였다. 2002년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문제로 미국과 북한이 맞서고 급기야 12월 들어 중유공급이 중단되자 북한이 핵시설 봉인 장치 제거 등 핵동결 해제조치를 취하고 12. 31.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2003. 1. 10. 핵비확산조약(NPT) 탈퇴하는 등 2차 핵위기가 발생했다. 2006년에는 북한이 10. 9.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북한의 핵위혐이 국내외적으로 현실화됐다. 그러한 북한 핵 위기가 국제 이슈로 부각되던 시기에 동계올림픽 유치가 남북 간 평화와 화해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아젠다가 IOC 위원들의 표심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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